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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ubebell의 다른 이야기들.

내가 대학교 때 심리학에 꽂혀서

심리학을 부전공으로 변경하고 즐겁게 강의를 듣던 어느 날이었다.

 

중간 고사 때 내 나름대로는 성실하게 공부를 하고

시험에 임하여 정답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적었으나

결과는 C+.

 

난 충격에 휩싸였고 ^^;;;

나중에 시험지에 적힌 사유를 보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.

 

'답들을 서술하여 적으세요. 단답식은 좋지 않습니다'

 

그렇다.

고등학교 3년 + 대학교 4년동안

나는 이과생의 생각과 이과생의 마음만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.

자연의 이치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

모든 것은 문장으로 간략하게 정리되어야 하며, 그것들을 나열할 땐

1, 2나 가, 나와 같은 구분자로 구분해서 나열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.

 

그러고 보니.... 군대에서 행정병 생활을 할 때에도 짧은 문장만을 반복해서 사용했었던 것 같다.

아..... 간결하고도 짤막했던 내 삶이여 ㅋㅋㅋㅋㅋ

 

그래서 그 이후로는 내 생각을 길게 나열하는 훈련을 했다.

같은 이야기여도 답지에 달라 붙는 각주처럼 짧은 요약 문장이 아니라

친구나 동료에게 얘기하듯 자세히 적는 훈련 말이다.

 

자랑처럼 들리겠지만, 나는 그 이후로 A- 이하를 받은 적이 없다 ㅋㅋㅋㅋㅋㅋ

 

 

시간은 흐르고 흘러

우여곡절 끝에 난 IT 개발자가 되었다.

 

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

개발자들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'서술 능력'이 약하다는 것.

 

메일을 보면, 뭘 말하려고 하는지 문장들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.

짧게 짧게 문장들을 나열했을 뿐이지, 그 문장들끼리는 어떠한 유기 관계도 보이지 않고

뭘 말하려는지 확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.

그 뿐인가.

그런 내용들을 설령 앞에 나가서 발표라도 하라고 시키면

대부분의 개발자들이 횡설수설하곤 한다.

 

내가 잘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. (그리고 나는, 내가 좀 더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)

개발자들은 늘 코드를 다루고 에러와 익셉션을 잡는 게 일이다보니

자신의 생각을 자세하게, 그리고 부드럽게 연결하여 나열하는 방식에 익숙치가 않다.

그러다보니, 발표를 할 때에도 긴장을 하게 되며, 메일을 쓸 때에도 설득력 없는 글을 적어 보내는 경우가 많다.

 

개발자로 경력이 쌓이다 보니

개발보다는 관리와 의사소통의 비중이 조금씩 커져 가는 것을 느낀다.

그런데 재미 있는 건, 회사에서는 관리와 의사소통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은 거의 시켜 주질 않는다는 것.

 

결국, 개발 실력은 좀 없더라도 말발과 센스를 갖춘 사람이

갑자기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가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.

 

무엇이 문제일까?

뭐 교육 시스템이나.... 대학교에서의 충분하지 못한 발표, 토론 문화... 이런 거에 문제가 있겠지만

지금은 문제에 대해 논해 봤자 의미가 없다.

 

 

 

지금부터라도 몇 가지 연습을 해 보자.

 

- 팀장이나 윗선에 보내는 보고 형태의 메일이 아니라면

  간략하게라도 구분자 없이, 문장의 형태로 길게 이어지는 메일을 적어보자.

  육하원칙은 문장의 형태로 적을 때 오히려 이해가 더 쉽다.

 

- 말을 할 때 앞뒤의 말을 잇는 연습을 해 보자.

  개발자들은 코드와 씨름하느라 버릇이 들었는지 몰라도

  서로 대화하는 것도 굉장히 짧고 기계적으로 한다.

  말할 때에는 앞에 내가 뭐라 말했는지, 또 뒤에는 뭐라 말할지 천천히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.

 

- 발표 기회가 잡힌다면, 무조건 도전하라.

  많은 이들의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는 쉽사리 생기지 않는다.

  기회가 주어진다면,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말고 무조건 도전하라.

  그리고 집에서든, 친구들 앞에서든 몇 번 연습해 보면

  그냥 무대포로 도전하는 것보단 훨씬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.

 

- 평상시에 자신의 감정,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보라

  불쌍한 개발자들..... 감정이나 일상에 대한 이야기거리도 별로 없고..... ㅠ.ㅠ

  그런 얘기를 즐기지도 않는다.

  그러지 말고, 지금부터라도 하루 5분, 10분이라도 아내나 친구, 애인이나 가족과  그런 얘기들을 해 보자

 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말하는 훈련을 하면, 훨씬 말과 문장 구현력이 유창해진다.

 

 

 

내가 아래 직급의 개발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.

'개발만 잘 하지 말고,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꼭 키워야 한다'고.

 

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뇌 뿐만이 아니라 입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^^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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